2009년? 2010년 송년모임인지, 한양대에서 했었지요? 직전 대표님 사진중 어떤 것을 전시해 놓을것인가 광장에(신길역에 있을때) 가져다 놓은 것을 우연히 들러 한번 보고 살짝 놀랐었습니다. 너무나 싱그러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저를 보고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표님을 처음 뵌것은 철도 집회때였습니다. 2005년 아니면 06년 즈음 이겠군요. 서울청비창에서 했었는지 철도시위는 당연히 철도사람들만 모여 하는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후덕해 보이시는 아주머니(그때는 패미니즘이나 성평등에 무지할때였으니 이 표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ps지금은 약간 나아졌습니다) 한분이 계시면서 전체가 노동가요를 부르는데 중간 중간에 계속 선창을 하고 계셨었습니다. 어? 집회때 노동가요 가사집도 나눠주고 했는데 누군데 왜 나서서 선창을 할까? 그것도 철도랑 관계없어 보이시는 분이... 하면서 그 분을 몇 번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기억하는 대표님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그 후 동료의 권유로 서울노동광장의 소금꽃 교육에 2007년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때 그 아주머니(!!!)가 서울노동광장이라는 곳의 대표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참여하는 분임조에서 학습하고 뒷풀이에 참석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몇 번 뵈었어도 기억을 못했고 더군다나 사회문제의식을 철도이외의 누구와 함께 나누고 공유할 정도로 깊이 할때가 아니어서 상담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소금꽃 이후, 철도라는 울타리안에서만 머무를게 아니라 노동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체계적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생각하던때에 2009년 쌍용차 노동자가 구조조정 반대투쟁과정에서 겪었던 일련의 경과를 설명하는 집담회가 광장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전 평생의 동지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표님의 조언이 있었다는건 후에 그 사람이 얘기 해 주기전에는 몰랐었습니다 "대표님이 한번 더 참고 만나라고 하지 않으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 후 대표님이 광장으로 부르셔서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이 후에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니?"
우리 둘을 함께 놓고 하시는 질문인것 같아서 " 전 철도에 있으니 이쪽으로 활동할 여지가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바깥활동은 성격상 적극적으로 하기 힘드니 그 사람에게 맡기고 내조를 하고싶다" 이런식으로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를 조금이나마 철도의 그리고 "노동자"로 각성하도록, 도움을 주신 것은 철도의 여러 선배, 형님들이시지만 사회적인 "노동자"로 일깨운것은 소금꽃, 그리고 대표님이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문제에 쉽게 지쳐 그러하듯 둔감하지 않으시고 그때마다 눈시울을 붉히시고 안타까워 목소리마져 떨리시던 대표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9년? 2010년 송년모임인지, 한양대에서 했었지요? 직전 대표님 사진중 어떤 것을 전시해 놓을것인가 광장에(신길역에 있을때) 가져다 놓은 것을 우연히 들러 한번 보고 살짝 놀랐었습니다. 너무나 싱그러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저를 보고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표님을 처음 뵌것은 철도 집회때였습니다. 2005년 아니면 06년 즈음 이겠군요. 서울청비창에서 했었는지 철도시위는 당연히 철도사람들만 모여 하는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후덕해 보이시는 아주머니(그때는 패미니즘이나 성평등에 무지할때였으니 이 표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ps지금은 약간 나아졌습니다) 한분이 계시면서 전체가 노동가요를 부르는데 중간 중간에 계속 선창을 하고 계셨었습니다. 어? 집회때 노동가요 가사집도 나눠주고 했는데 누군데 왜 나서서 선창을 할까? 그것도 철도랑 관계없어 보이시는 분이... 하면서 그 분을 몇 번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기억하는 대표님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그 후 동료의 권유로 서울노동광장의 소금꽃 교육에 2007년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때 그 아주머니(!!!)가 서울노동광장이라는 곳의 대표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참여하는 분임조에서 학습하고 뒷풀이에 참석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몇 번 뵈었어도 기억을 못했고 더군다나 사회문제의식을 철도이외의 누구와 함께 나누고 공유할 정도로 깊이 할때가 아니어서 상담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소금꽃 이후, 철도라는 울타리안에서만 머무를게 아니라 노동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체계적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생각하던때에 2009년 쌍용차 노동자가 구조조정 반대투쟁과정에서 겪었던 일련의 경과를 설명하는 집담회가 광장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전 평생의 동지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표님의 조언이 있었다는건 후에 그 사람이 얘기 해 주기전에는 몰랐었습니다 "대표님이 한번 더 참고 만나라고 하지 않으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 후 대표님이 광장으로 부르셔서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이 후에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니?"
우리 둘을 함께 놓고 하시는 질문인것 같아서 " 전 철도에 있으니 이쪽으로 활동할 여지가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바깥활동은 성격상 적극적으로 하기 힘드니 그 사람에게 맡기고 내조를 하고싶다" 이런식으로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를 조금이나마 철도의 그리고 "노동자"로 각성하도록, 도움을 주신 것은 철도의 여러 선배, 형님들이시지만 사회적인 "노동자"로 일깨운것은 소금꽃, 그리고 대표님이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문제에 쉽게 지쳐 그러하듯 둔감하지 않으시고 그때마다 눈시울을 붉히시고 안타까워 목소리마져 떨리시던 대표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부디 영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