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꿈꾸고, 그 꿈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들

 

문명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저마다의 유토피아를 꿈꿔왔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회를 뛰어넘는 세상을 꿈꿔왔고, 어떤 사람들은 그 꿈을 위해 모험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역사 이래로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바램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예수, 바뵈프, 전봉준, 호치민, 체 게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68혁명의 주역들을 만나봅시다. 그들은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위해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책과 영상물을 통해 경험해봅시다.

그리고, 이 꿈이 없는 시대에 우리들의 꿈을 찾아봅시다.

 

꿈을 꾼다는 건 그것을 간절하게 그리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움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열망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이 그리워하는 대로 변합니다. 인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당신이 꿈을 꾼다는 것은 그것을 간절히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변혁입니다.

 

과거는 오늘 현실에서 미래로 다가가는 창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20세기 혁명의 기억에 접속하는 이유는 혁명이란 무엇이었으며 오늘의 혁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려합니다. 이를 통해 유토피아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다시한번 일으켜야 합니다.

 

혁명은 언제나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이상(理想)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대로 혁명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이상입니다. 하늘에게 운명을 맡기는 것을 천명이라 한다면, 천명을 거스르는 것은 혁명입니다. 사회와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겉으로는 늘 변함없어 보이지만 언제나 변화합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 이것은 바로 천명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류가 언제나 꿈꾸어왔던 나라는 바로 모두가 행복한 나라입니다. 혁명이란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우리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다면 행복한 나라는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민중들은 피를 흘리고 목숨까지 내놓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꿈꾸고 있는 유토피아는 어떤 사회입니까?

당신은 왜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까?

그 꿈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자료

[철학콘서트 1권](황광우),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중 피텔카스트로 최후 진술(이메진 출판사), [레볼루션 시리즈의 발간사](신영복)

 

토론주제

1) 인간은 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가?

2) 새로운 사회를 꿈꾸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는 무엇인가?

 

 

 

고대사회에서 만민평등과 인류애를 실천한 혁명가, 예수

 

■ 구약성서, 신약성서

 구약성서: 예수 이전 하나님(야훼)를 믿고 따르던 유대교의 정경. 구약정경 39권

신약성서: 예수 이후 3~40년 경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을 수집 조사해 정리한 예수에 관한 기록. 여기서 신약은 '구약' 즉 오래된 계약(약속)을 갱신하는 의미로서 '신약' 즉 새로운 계약(약속)을 의미. 예수 이후 떠돌던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정리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은 매우 다양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음. 이들 간의 핵심적 논쟁은 '예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구약' 즉 유대교에 대한 입장이었음.

 

신약정경 27권의 형성

-마르시온이라는 영지주의적이고 반유대적 경향을 지닌 기독교지도자에 의해 최초의 정경화 시도. 이에 맞서 사도계열의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하나님과 유대교의 야훼가 동일한 신이기에 유대교와의 단절에 큰 부담을 느낌과 동시에 '예수는 영지를 깨달은 영적 스승이며, 영지를 얻게 되면 누구나 예수와 같은 영적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적 경향이 당시 기독교를 체계화 하고 서열화 하는데 용남할 수 없었음.

-정치적으로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하나의 황제'라는 의도에 따라 다양한 기독교 그룹들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음.

-이러한 배경에 따라,

① '사도성'-내용이 얼마나 예수의 직계 제자들이 전한 내용에 가까운가.

② '보편성'-당시 다양한 기독교 그룹 중 주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던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교회들 사이에서 유통되던 신약문서인가.

 

이를 기준으로 신약정경 27권 체계가 마련됨.

 

신약성서 27권-복음서 4권(마태, 마가, 누가, 요한)/초대교회의 역사서 1권(사도행전)/바울과 교회지도자들의 편지 13권/히브리서 1권/공동서신 7권/묵시문학(요한계시록)

 

■ 복음서의 예수이야기

 

1. 길 위의 예수, 마가 (마르코)이야기

-마가의 예수가 품은 핵심 가치

마가복음이 전하는 예수이야기는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갈릴리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길 위'에서 벌어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도한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길 위에서 만나, 길 위에서 대화하고, 결국 예수는 골고다의 길 위에서 고난 받는다. 고로,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앎과 삶의 괴리가 없었고, 지혜는 교환가치가 아닌 존재가치로서 소통되었다.

히브리 성서가 묘사하는 하나님은 애초에 장소에 거하는 신이 아닌 '길 위에 생존하는 신이었다.' 이들은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을 갈 때만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길 떠나기를 멈추고 안주했을 때, 그들의 신앙은 부패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정 체제 하에서 장소에 거하는 신으로 전락한 유대교를 예수는 길의 종교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마가의 예수는 마지막 예수 부활을 전하면서도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다시말해,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갈릴리로 '길'을 떠나라는 것이다. 즉 길의 완성은 다시 길을 떠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가의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나라, 권좌 위의 왕보다 들판의 목자들에게 먼저 예고되는 나라, 부자의 황금보다 가난한 여인의 동전이 칭찬받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경우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묻고 밤과 낮에 자고 일어나는데ㅡ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가 돋아나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처음에는 줄기ㅡ 다음에는 이삭, 다음에는 이삭에 가득한 낟알을 냅니다., 그리고 열매가 익으면 그 사람은 즉시 낫을 댑니다. 추수(떄)가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할까, 혹은 무슨 비유로 그것을 표현할까? 겨자 씨앗과 같습니다., 그것이 땅에 뿌려질 때는 땅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작습니다. 그러나 뿌려지면 자라서 어떤 푸성귀보다도 크게 되어 큰 가지들을 뻗칩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수 있게 됩니다.'

 

-마가의 예수가 전하는 삶의 태도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철저한 '무소유'의 실천을 '삶의 태도'로서 강조

 

-마가의 예수가 전하는 진정한 해방, 변혁의 지표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를 불러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는 대중적 지지와 인기를 이용해 정치세력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자들은 부패한 사제와 로마제국주의자들을 섬멸하고 새로운 권력을 '얻음'으로써 예수의 길이 완성되는 것이며, 참된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뜻 속에 온전히 바치는 '버림'의 길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철저히 자신을 '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길이 '영광과 권력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이라는 사실을 얼지 못한 것이다.

제자들의 바람처럼 세력화하고 군대를 길러 로마 제국과 타락한 사제들을 몰아낼 수 있겠지만, 그것은 권력의 주인이 바뀐 것 일 뿐, 진실로 핍박받고,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인민들의 삶은 변하는 것이 없음을 길 위의 역사를 통해 예수는 끊임없이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 담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담긴 전복적 사상과 상상력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철저히 계급적이며, 근본적인 예수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2.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복음, 마태의 예수이야기

-마태의 예수가 품은 핵심가치: 산상수훈의 여덟 개의 복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할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의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하늘나라)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 혹은 신자들이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다스리시는)나라 다시 말하면, 여덟 개의 복을 이루는 자에게만 허락된 하나님의 체제이며, 가난한 사람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

또한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궁극적 완성은 ‘아직’도래하지 않은 미완의 세계. 즉 현재의 실천과 미래의 희망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성실하게 견뎌낸 사람들의 나라

하나님의 의와 자비로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되는’ 나라

 

-마태의 예수가 전하는 변혁의 지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가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두 말씀에서 유추해 보건데, 당시 예수가 가장 완강하게 싸웠던 대상이 바로 인민들을 율법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권력에 빌붙었던 부패한 율법학자들과 율법, 진정한 하나님 나라운동, 참 해방의 길을 현실과의 타협 아래 변질시킨 바리새파들이었다. 즉, 너희의 의가 이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의 의보다 낫지 않다면, 곧 그들의 억압과 변절에 맞서 싸운다면, 그로 인해(의를 위해)박해받은 사람이라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여기서 의란 하나님 나라의 의이며 여덟 복 전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 수도하는 마음으로 혼자만 여덟 복을 지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인민들을 억압하는 것들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울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근본적 꿈과 그 길을 향한 치열한 실천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소외된 자들의 기쁜 소식, 누가의 예수이야기

-누가의 예수가 품은 핵심가치: 율법에 갇힌 기존의 관습과 질서를 깨는 실천적이며 전복적인 가르침

 

-누가의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고, 추운 들판에서 밤을 새며 노동하는 양치기들에게 가장 먼저 목격되고, 인간으로서 조차 취급받지 못하는 사마리아 인들에게 열려있는 전복적 가치를 지닌 나라

 

-누가의 예수가 전하는 변혁의 지표

율법교사와 나눈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의 마지막 문구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에 드러나듯이 율법과 교리에 갇힌 문구가 아닌, 기존의 관습과 관념체계, 나아가 그에 근거한 지배체계에 대한 정면도전을 직접적 실천을 통해 극복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4. 타는 목마름으로, 요한의 예수이야기

-요한의 예수가 품은 핵심가치: '나는 목마르다.'

육신의 갈망이 아닌 진리에 대한, 궁극적 갈망에 대한 자각.

 

-요한의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이는 고립된 개인의 고뇌가 아닌 타인과의 진실한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존재의 확장, 즉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각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곳.

 

-요한의 예수가 전하는 변혁의 지표

"네 이웃을 에 몸같이 사랑하라." 이웃의 고통을 내 일처럼 예민하게 느끼고 그들과 연대하라. 나아가 인간으로의, 인류로의 존재의 무한한 확장을 통해 시대가 가진 궁극적 갈증의 실체를 파악하고 따뜻한 연민과 연대를 통해 진정한 구원을 얻으라.

 

■ 복음서가 전하는 부활이야기

 신약성서에는 부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2개 나온다. '아나스타시스'놔 '에게이로'가 그것이다. 두 단어는 복음서에서 주로 잠이나 병, 죽음이나 억압에 맞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에서는 '부활'과 '봉기'는 같은 어간을 가지고 있다. 부활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봉기와 동의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부활의 현장은 예수를 따르던 민중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곳이다.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것은 그곳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운동에 함꼐 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복음서의 '믿음'이야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신념체계는 머리가 아닌 가슴의 언어이다. 특정한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마음으로 주고받는 주관적인 고백 차원의 언어이다.

신앙이란 이성적 계산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신 앞에 내던지는 도약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 때문에 진정한 신앙은 용기가 필요하다.

즉, 믿음은 미래를 선취하는 힘이요 가능성이며, 미래는 믿음(신념)으로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사람은 꿈꾸는 만큼 성장한다. 믿음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 꿈꾸며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무조건적인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 신약성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신약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처해있는 다양한 삶의 무늬 속에서 다채로운 예수 상을 그려낸다. 그들은 "예수와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신약성서는 이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첫째, 신약성서를 어떤 특권적인 시각에서 읽는 것을 포기하라.

둘째, 신약의 문서들이 지닌 역사성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신앙의 근거는 그리스도가 신적 권위로 말했다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의 가난한 청년이 배고픈 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고 눈 먼 자들을 보게 하고 정의를 위해 살다가 죽었다는 데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라.

넷째, 신약성서는 천국행 지름길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는 끊임없이 우리의 상식적 세계관을 전복하고 교란한다.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만난 곳은 교회가 아니었다. 갈릴리라는 민중들의 고난의 현장이었고, 굶주린 이웃들이 작은 빵을 나누는 식탁이었고, 좌절한 제자들이 낙향하는 길 위에서였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모든 소유를 팔아서 전적으로 헌신할 때만 가능한 실체로 드러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올바로 살기 위해 고통과 헌신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삶을 즐기라고 더 많이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실은 인생의 진짜 즐거움과 진짜 행복을 쫓는 일과 관련되어 있슴을 알려 준다. 예수의 별명은 ‘먹고 마시길 즐기는 자’였다.

예수는 우리가 삶의 기쁨과 의미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예수의 입을 통해 거듭 전해질 하느님 나라는 세레자 요한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던 하느님 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로 만들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이 준비하고 초대하는 잔치같은 것이다.

예수의 회개는 근본적인 회심을 촉구한다. 예수는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서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의 말은 고통받는 사람과 죄인들이 지배계급이 누리던 부와 권력을 빼앗아 새로운 지배 계급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고통 덕에 안락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인권을 회복하는 일을 기초로 할 수밖에 없다.

복음서를 읽는 것은 ‘한 평범한 시골 청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되었는가’를 증언한 책이다.

 

자료

[인류의 영원한 고전,신약성서] (아이세움.정승우), [예수전](돌베게/김규항)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슈퍼스타](피에르 파올로 퍼솔리니 작품)

 

토론주제

예수는 그 당시의 모든 관습과 싸워고, 그 관습을 깨는 실천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소외받는 인간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들의 편에 섰다. 그 덕분에 식민지 유대의 땅에서 자신의 민족에게 팔려 로마의 반역죄로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1)진정 예수가 원했던 사회는 무엇이며, 그 싸움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2)예수가 이 사회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19세기 역사의 포문을 연 프랑스대혁명, 그리고 숨겨진 혁명가 바뵈프

 

18세기 말,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봉건시대를 끝내고 자본주의시대로 넘어가는 정치적 이정표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나 그것이 유럽사회에 미친 여향력은 엄청났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람들의 어떤 열망속에서 일어났으며 그 열망이 이후 유럽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 시대로 돌아가 경험해봅시다.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한 뒤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들 중에서 대혁명 직후 처형당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혁명가가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가 바뵈프를 통해 그가 꿈꾸고 실현하려 했던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상상해봅시다.

 

 

<프랑스 대혁명>

 

1. 원인

 

① 불평등한 사회 체제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모순에서 발생하였다. 구체제 하에서는 인구의 2% 정도밖에 안 되는 제1신분(추기경등의 로마 가톨릭 고위 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은 면세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 주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점하였다. 인구의 약 98%를 차지하던 제3신분(평민)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했지만 제3신분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삼부회가 175년이나 소집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② 국가 재정 파탄

왕실의 과도한 지출로 인해 루이 14세부터 프랑스 재정은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영국의 미국진출을 견제하려는 미국 독립 전쟁 참전으로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파산 직전에 이른 재정을 충당하기위해 제3신분에게 부과되는 세금은 점점 과중해졌고, 루이 16세에 이르러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불만이 극에 달하였다.

 

③ 프랑스 민중의 사회 개혁 의지

제3신분에는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지식인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사회 개혁 의지를 갖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육체 노동자, 노숙인, 소상인등의 프롤레타리아 계급들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혁명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장 자크 루소의 공화주의 이념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사회체제에 항거해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여 혁명에 가담하였다.

 

2. 혁명의 전개

 

① 삼부회 소집

 루이 16세는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재정 개혁을 단행하려 하였다. 재무 장관이었던 샤를 알렉상드르 드 칼론은 명사회를 소집해 특권 계층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는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받을 것을 우려한 귀족들은 개혁안을 거부하고 삼부회를 소집할 것을 요구하였다. 국왕은 결국 1789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삼부회를 소집하였고 귀족 300명, 성직자 300명, 평민 600명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표결방식을 둘러싸고 귀족, 성직자 대표와 평민 대표 간에 갈등이 생겼다. 불평등한 표결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평민대표들은 1789년 6월 20일 회의장을 테니스 코트 건물로 옮기고, 요구가 승인되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이 의회를 해산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국민의회를 조직하였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 3월 24일에는 국민의회에 정치와 결탁하여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던 고위 성직자들과는 달리 민중의 관점에서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진보적 사고를 갖고 있던 로마 가톨릭 사제들과 자유주의 귀족 47명도 합류하였다. 7월 9일에는 제헌국민의회라 칭하여, 인민의 최고 입법 기관으로서 프랑스 헌법 제정에 착수하였다.

 

② 바스티유 감옥 습격

 왕당파가 제헌국민의회의 무력 탄압을 기도하며 지방으로부터 군대를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지자, 1789년 7월 12일부터 군대와의 충돌을 반복하였다. 7월 14일, 파리 민중들은 혁명에 필요한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민중들은 도개교(跳開橋)를 내리고 감옥으로 쇄도하여 감옥을 점령하였다. 이 습격의 성공은 바야흐로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 이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가담한 이유는 기득권층들에 대한 감정적인 불만이나 부르주아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자"면서 평등사회를 추구한 장 자크 루소의 영향으로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사회개혁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민중이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권리인 저항권을 헌법으로 존중한다. 덕분에 혁명의 불길은 지방까지 확산되었다. 8월 4일에 제헌국민의회는 봉건적 특권이 폐지되었음을 선언하고, 26일에는 프랑스 인권 선언을 채택하였다.

 

③입법 의회

 그러나 국왕이 제헌국민의회의 선언을 인정하지 않자, 여인들을 중심으로 민중들은 베르사유 궁전으로 행진하여 왕을 파리로 압송하였다. 1791년에는 제한 선거와 입헌 군주제를 골자로 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어 10월에 입법의회가 구성되었다. 당시 입헌 군주제를 지지하는 푀양당이 입법의회를 주도하였으며,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은 공화제를 지지하였다. 한편 1791년 6월에 국왕 일가는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려다 발각되었다.(바렌느 사건)

 

④ 국민 공회

 혁명이 프랑스 밖으로 전파될까 두려워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자국의 혁명 지지파를 박해하였다. 이에 프랑스는 1792년에 이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혁명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 초기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연합군에게 프랑스는 패배를 거듭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국왕과 왕족이 프랑스를 배반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국왕 일가가 머물고 있던 튈르리 궁전을 습격하여 그들을 감금하였다. 한편 혁명전쟁은 민족주의를 자극시켜 지방에서 의용군이 조직되어 파리로 모이게 하였고, 프랑스군은 마침내 9월 20일에 프로이센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입법의회가 해산되고 국민공회가 소집되었다. 국민공회는 공화정을 선포하고(제1공화정) 1793년 1월에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였다

 

⑤ 공포 정치

 1793년 6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가 주도하는 자코뱅당은 국민공회에서 지롱드당을 숙청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민주적인 새 헌법 제정을 보류하고 공안 위원회를 중심으로 혁명 정부를 수립하였다. 결과적으로 로베스피에르는 국내외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로베스피에의는 혁신 정책은 민중의 지지를 얻었으나 상공업자들과 토지를 얻은 농민들은 혁명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포정치가 계속되자 반대파는 혁명력 2년 테르미도르 9일(1794년 7월 27일)에 로베스피에르를 국민공회에서 숙청하였다.(테르미도르의 반동)

 

⑥ 총재 정부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된 후인 1795년에 국민공회는 1795년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총재정부를 수립하였다. 5명의 총재가 행정권을 갖고, 원로원과 500인회에서 입법권을 갖는 체제였다. 하지만 총재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반대파들이 일으킨 반란에 직면하게 됐다. 반대파의 반란은 방데미에르 13일(1795년 10월 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반대파의 반란을 진압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후 이집트 원정과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반면 총재정부는 당시의 경제, 사회적 불안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민심을 잃었다. 마침내 나폴레옹은 1799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총재정부를 전복시키고 통령정부를 수립하여 제1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3. 혁명 정신

 

흔히 자유와 평등, 박애라고 알려져 있지만 처음에는 자유와 평등, 권리였다. 1789년 8월 26일에 발표한 프랑스 인권선언에도 박애는 거론하지 않았다. 선언문 제2항에서 “자유와 소유권, 안전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밝히어 자유와 소유권, 안전(생존권), 저항권을 천명하였다. 1793년에 제정한 프랑스 헌법에도 자유와 평등, 안전, 소유권을 말하였고(특히 제8조는 안전과 인격, 권리 그리고 재산만을 거론하였다) 혁명과 관련하여 “박애”를 명시한 기록은 1793년 파리 시 집정관 회의이며, “공화국을 위해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라.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표어를 모든 집에 내걸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한편,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 속에는 르네상스 이래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존중, 인간존엄이라는 천부인권사상이 전제되어 있고 이는 곧 인도주의, 박애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1875년 공화국 헌법(제3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프랑스 공화국의 공식 이념으로서 자유와 평등, 박애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4. 프랑스 인권선언

 

① 내용

제3조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대한 조항이다. 제16조에서는 권력 분립의 원칙에 관련해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 조항이 있다. 즉,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의 각국의 성문 헌법은 권리의 보장을 선언한 권리장전과 국가권력의 체계를 규정한 국가법 부분으로 크게 두가지 규정이 담겨 있다.

 

 

② 전문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망각 또는 멸시가 오로지 공공의 불행과 정부 부패의 모든 원인이라는 것에 유의하면서, 하나의 엄숙한 선언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불가양이며, 신성한 제 권리를 밝히려 결의하거니와, 그 의도하는 바는, 사회체의 모든 구성원이 항시 이 선언에 준하여 부단히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입법권과 행정권의 제 행위가 수시로 모든 정치제도의 목적과의 비교에서 보다 존중되게 하기 위하여, 시민의 요구가 차후 단순하고 명확한 제 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언제나 헌법의 유지와 모두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의회는 지고의 존재 앞에 그 비호 아래 다음과 같은 인간과 시민의 제 권리를 승인하고 선언한다.

 

제 1 조,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 2 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전함에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의 저항 등이다.

제 3 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유래하지 않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제 4 조,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연권의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이외의 제약을 갖지 아니한다. 그 제약은 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제 5 조, 법은 사회에 유해한 행위가 아니면 금지할 권리를 갖지 아니한다. 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방해될 수

           없으며, 또 누구도 법이 명하지 않는 것을 행 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

제 6 조, 법은 일반 의사의 표명이다.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 표자를 통하여 그 작성에 협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법은 보호를

           부여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가하는 경우에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법 앞 에 평등하므로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의한 차별 이외에는 평등하게 공적인 위계, 지위, 직무 등에 취임할 수 있다.

제 7 조, 누구도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 그리고 법이 정하는 형식 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소추,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자의적 명령을

           간청하거나 발령하거나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시키는 자는 처벌된다. 그러나 법에 의해 소환되거나 체포된 시민은 모두 즉각

            순응해야 한다. 이에 저항하는 자는 범죄자가 된다.

제 8 조, 법은 엄격히, 그리고 명백히 필요한 형벌만을 설정해야 하고 누구도 범죄 이전에 제정·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적용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될 수 없다.

제 9 조, 모든 사람은 범죄자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므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판정되더라도 신병을 확보하는 데

            불가결하지 않은 모든 강제 조치를 법에 의해 준엄하게 제압된다.

제 10 조, 누구도 그 의사에 있어서 종교상의 것일지라도 그 표명 이 법에 의해 설정된 공공 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한 방 해될 수 없다.

제 11 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 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 12 조, 인간과 시민의 제 권리의 보장은 공공 무력을 필요로 한 다. 따라서 이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설치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위탁되는 사람들의 특수 이익을 위해 설치되지 아니한다.

제 13 조, 공공 무력의 유지를 위해, 그리고 행정의 제 비용을 위 해 일반적인 조세는 불가결하다. 이는 모든 시민에게 그 들의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제 14 조,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그들의 대표자를 통하여 공공 조세의 필요성을 검토하며, 그것에 자유로이 동의하며, 그 용도를

             추급하며, 또한 그 액수, 기준, 징수, 그리고 존속 기간을 설정할 권리를 가진다.

제 15 조, 사회는 모든 공직자로부터 그 행정에 관한 보고를 요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제 16 조,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확정 되어 있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아니한다.

제 17 조, 하나의 불가침적이고 신성한 권리인 소유권은 합법적으로 확인된 공공 필요성이 명백히 요구하고, 또 정당하고,

             사전의 보상의 조건하에서가 아니면 침탈될 수 없다.

 

 

<최초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바뵈프>

 

별칭은 Gracchus Babeuf.

1760. 11. 23 프랑스 생캉탱~1797. 5. 27 방돔.

 

프랑스 혁명 초기의 혁명가이자 이론가이다. 그의 빈틈없는 전략은 19세기 사회주의운동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가 구상한 토지개혁이 BC 2세기 로마 정치가 그라쿠스의 개혁과 비슷하다하여 그라쿠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바뵈프는 1760년 11월 23일 피카르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글을 잘 쓰고 총명했다고 한다. 열두 살에는 피카르디 운하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 때 아름다운 글씨체 덕분에 봉건 법무사의 도제로 들어갔으며, 21살 때인 1781년에는 자신의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1776년부터는 토지측량사로 활동했으나 봉건적인 농업세에 대해 깊은 혐오를 느껴 정치 저널리스트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1788~92) 그가 몽디디에(Mondidier) 지구의 행정관이 되었을 때, 토지법과 토지분배의 문제에 관하여 글을 썼다. 1783년 파리에 와서 공포정치 기간 중에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의 급진 민주주의적 자코뱅 체제 몰락에 뒤이은 우익 테르미도르 반동기간 중 파리로 돌아와 잡지 {인민의 호민관(Tribun du peuple)}을 만들고, 이 잡지에서 그는 평등한 사회를 세울 목표로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이 잡지를 통해 테르미도르파를 공격하다가 체포당했다(1795. 2. 12).

투옥당한 짧은 기간 동안 토지와 수입의 균등한 분배를 옹호하면서 평등주의 원칙을 세웠고 석방된 뒤에는 직업혁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 프랑스 헌법에 도전해 정치적·경제적 평등을 추구한 팡테옹회(會)에서 곧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1796년 팡테옹회가 해체당한 뒤에는 반란을 꾀해 비밀단체인 6인 내부위원회를 만들었다. 1796년 5월 8일 바뵈프파, 자코뱅 당원, 군인들로 이루어진 반란준비 전체모임이 열렸다. 이들은 1만 7,000명으로 봉기를 일으키고 인민 대중의 합법적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한 1793년 헌법을 되살리려는 계획을 꾸몄다. 그러나 한 밀고자가 이 계획을 정부에 누설해 1796년 5월 10일 음모가담자들이 체포당했다. 1797년 2월 20일과 5월 26일 사이에 재판이 열렸으며 이 재판의 결과로, 바뵈프와 그의 동지였던 오귀스탱 다르테만 빼고 모두 석방되었고 이 두 사람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봐뵈프 이론의 역사적 중요성은 처음으로 공산주의가 철학적 몽상이 아니라 정치적 계획이라는 사실에 있다. 또한 이 학설은 "평등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각자에게 동일한 것을 줄 것을 권하였다.

바뵈프에게 사회의 목표는 공동의 행복이었고, 혁명은 모든 시민들 사이에 향유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적 소유는 반드시 불평등을 초래하며, 토지 개혁, 즉 토지의 평등 분배조차도 단 하루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평등 분배 이튿날부터 불평등이 나타난다), 평등에 도달할 수 있는 그리고 시민 각자와 그 후손들에게 풍요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존재의 유지ㆍ발전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관련된 생존권은 소유, 계약, 또는 관용의 권리에 선행하기 때문에, 소유권보다 우위에 있다. 따라서 소유의 발전이 …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는 부도덕하고 저주받고 타락한 사회다.”

 

“생존권은 속임수든 폭력이든 가능한 모든 수단에 의해서 유지, 요구, 재확립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 정당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존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고 가로막는 모든 것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전제한다.”

 

『영구적인 토지조사』에서 바뵈프는 국가가 의사와 법관들에게 공공 기금에서 보수를 지급하고, 모든 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국적인 공공 교육 체제를 입안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제헌의회에 소금세의 즉각적인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서에서는 “법은 법을 실행해야 하는 사람들 대다수의 소망과 그들의 권익에 부합할 때에만 법이다. … 민중은 의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안다.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를 뽑아준 주민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라고 했다.

 

1791년 2월 제헌의회에 제출된 봉토에 관한 청원에서는 봉건적 부과조의 완전 무상 폐지뿐만 아니라, 영주들의 영지는 모두 부당하게 찬탈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봉토와 영지의 몰수까지 주장했다.

 

“굶주리고 헐벗은 대다수의 주민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완벽한 평등은 본원적 권리다. 사회 계약은 이 자연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이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된다. … 가장 위험하고 가장 비도덕적인 장애는 이른바 소유권이다. … 토지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모두의 것이다.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각 개인은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알맞은 일자리에 배치되어야 한다. … 시민 각자에게 총 생산물 중에서 평등하게 배분된 몫을 보낼 것이다.”

 

국유 재산 매각을 책임지고 있었던 바뵈프는 1793년 1월 30일 목격자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나 순진하게 한 농장을 낙찰 받은 부유한 지주의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가난한 상퀼로트의 이름을 써 넣었다. 바뵈프의 선의는 의심할 바 없는 것이었지만, 반대파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안팎에서 바뵈프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자, 정부는 바뵈프를 체포하려고 했다. 이때부터 바뵈프는 총재 정부의 경찰을 피해 지하로 숨어 들어가 불공정한 사회 체제를 폭력으로 전복할 생각을 하게 된다.

 

1796년 5월 10일 바뵈프와 부오나로티가 체포되었고, 그들의 모든 문서는 압수당했다. 1797년 5월 26일 사형 선고 후, 바뵈프와 다르테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튿날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처형되었다. 정치적 유언장이나 다름없는 1796년 7월 14일자 편지에서 바뵈프는 르 펠르티에에게 그의 모든 “계획안, 노트,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글들의 초안들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로부터 다시 인류에게 행복을 마련해 줄 수단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너는 이 종이쪽들에서 모든 평등의 사도들에게 오늘날의 부패한 자들이 내 꿈이라고 불렀던 것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망에 답하면서 부오나로티는 1828년 브뤼셀에서 평등주의자들의 음모의 역사를 출간했다. (한국내 미 출간) 이 저작은 1830년대의 혁명 세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 덕분에 바뵈프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의 발전에서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

 

자료

[민중의 세계사] 중 ‘프랑스 대혁명’편(크리스하먼), [핀라드 역으로] 중‘바뵈프’편(에드먼드 월슨.이메진),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중 바뵈프의 최후진술(이메진)

 

토론주제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유럽사회는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 한다. 프랑스 대혁명이 유럽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또한,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한 뒤에 프랑스에 나타난 혁명적 사회주의자 바뵈프의 열정과 꿈을 확인해보자.

ⅰ)그가 진정 원했던 사회는 무엇이며, ⅱ)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 사회를 만들고자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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