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프리즘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의사 정혜신씨가 

얼마전 그분의 블로그에서  <벽속의 요정>이라는 공연을 소개했네요.

광장회원님들께 알리고 싶어 추천글을 옮겨 싣습니다. 

평소 그분의 열렬한 팬인데, 이렇게 좋다는 공연을 소개받으니,

꼭 한번 가서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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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이 2006년 초연된 후 벌써 4번째로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제 인생에서 동일한 공연을 가장 많이 반복 관람한
공연이지 싶습니다. 아직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툭 차오르고
그렇습니다.

올해도 다시 극장을 찾으려고 합니다.
-9/19(토)~9/27(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혹시 극장에서 마주치게 되면 의미있는 눈인사 나누겠습니다.^^
(초연 때 <벽속의 요정>을 처음 보고 나서 제가 쓴 글을 첨부합니다.)

연극 <벽속의 요정>을 보면서 나는 새삼 ‘전성기’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김질 한다. 전성기란 ‘바람의 파이터’로 불리는 최배달의 한창 때처럼 온 몸이 무기가 되어 어떤 적 도 다 상대할 수 있고 소화해낼 수 있는 최상의 상태다. 감정도 재능도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벽속의 요 정>에 출연 중인 배우 김성녀는 ‘완벽한 전성기’라고 확언할만 하다.

<벽속의 요정>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실화를 우리 시대 상황에 맞게 번안한 작품으로 6.25 직전부터 90년대까지가 배경이다. 이데올로기 문제로 40여 년간을 자기 집의 벽 속에 숨어지내는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함께 딸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내용이다. 손진책의 품위있는 연출이나 배삼식의 독창적인 각색 솜씨도 일품이지만 역시 압권은 배우 김성녀다. 이 뮤지컬 모노 드라마에 서 김성녀는 다섯 살배기 딸부터 60세넘은 노인, 꽃다운 처녀에서 유들유들한 중년 남성까지 1인 30여 역의 남녀 캐릭터를 연기한다. 앞으로 볼 때는 아이였다가 뒤돌아서는 순간 아빠로 변하는 김성녀를 보며 나는 접 신(接神)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목소리와 표정만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순식간에 영혼이 이동하는 듯한 다 차원적 느낌이 들어서다. 그러니까 <벽속의 요정>에서 김성녀를 경험하는 일은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에 대한 감탄을 뛰어 넘는다. 이대근의 오버하는 듯한 몸짓과 심은하의 스미는 듯한 표정이 순간적으로 교차하고 공존하는 절묘한 상황들. 수천 회의 모노드라마를 했다는 배우 김지숙의 말처럼 30년만에 처음으로 모노드라마에 도전한다는 김성녀의 그런 힘은 배우라고 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 한다고 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대재능에 가깝다.

나는 연극 <최승희>의 한 장면에서 실제 자신도 비슷한 처지라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는 배우 김성녀의 입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욕심 때문에 자식에게 소홀할 수밖 에 없었던 최승희의 회한을 들으며 목이 메였고, 연극 에서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한 여인의 눈물로 단숨에 무력화시 키는 배우 김성녀의 압도적 연기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작은 미진함도 없이 그녀의 완벽한 전성 기를 보여주는 작품은 단연코 <벽속의 요정>이다. 그것은 고승의 사리(舍利)처럼 30년 연기 내공의 진 수가 쌓이고 쌓인 김성녀라는 배우의 결과물일 것이다.
<벽속의 요정>에서 김성녀가 빚어내는 아우라는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렵다. 농구대통령이라 불렸던 ‘전성기 시절 허재’의 폭발적인 드리볼과 환상적인 슛동 작을 현장에서 볼 때의 가슴설레임이나 조용필의 절창을 공연장에서 육성으로 들을 때의 가슴 저릿함. < 벽속의 요정>에서 김성녀가 보여주는 몸짓, 표정, 노래가 바로 그렇다. 김성녀의 미세한 눈빛과 꽃씨처럼 날아와 가슴에 착근하는 투명한 노래소리를 듣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내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내 게 있어 전성기란 무슨 의미였을까’를 곱씹어 보게 된다. 그 질문의 의미를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 자 신의 내면적 실체가 촛불처럼 환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절대재능 을 가진 이의 전성기를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얼마나 유익하고 황홀한가.
김성녀라는 배우의 ‘완벽한 전성기’를 통해 나는 일반 관 객의 입장에서 ‘연극의 힘 혹은 매혹’을 또 다시 실감한다.